여행/자전거 여행

[일본 시코쿠 88개소 자전거 순례] 1st day : 출발

menzuru 2010. 10. 25. 22:14
반응형
- 1st day : 출발

  아침부터 빗발이 약간씩 날린다. 자전거를 분해하고 포장하는것이 생각보다 늦어져 거의 못잤다. 어차피 걱정반 설렘반으로 잠은 못잤을것이다. 나가시는 아버지의 트럭을 얻어타고 5호선 영등포구청역으로 갔다.

<영등포구청역 가는 길>

  짐을 들고 승강장까지 가는데 어깨가 끊어지는줄 알았다. 김포공항에서 AREX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별로없어 계속 앉아서 갈수 있긴 했지만 구린 차림새와 눈에 띄는 짐덕분에 시선을 좀 받아야했다.

<왠만하면 이런 꼴로 집밖을 나오진 않는다>

  모든게 계획대로 흘러... 가지는 않았다. 인천공항이 다가오자 촉박해진 시간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늦은 출발, 생각보다 무거운 짐, 생각보다 긴 이동거리 등.. 모든게 계획대로 되지 않을거라는 내 생각대로는 되는 듯 했다. AREX가 인천공항이라고 내려준 곳은 터미널과 거리가 좀 있었기 때문에 서둘렀다.

<달려라 달려!>

  항공사는 제주항공을 이용했기 때문에 제주항공 카운터에 가서 수속을 하였다. 신입으로 보이는 직원(친절하기는 했음)이 융통성없게 1kg도 안봐줘서 침낭을 빼서 20kg대로 맞추고 대형수화물 창구로 이동하여 짐을 보냈다. 짐을 보내고 나니 몸은 한결 가벼웠지만 시간은 여전히 별로 없었다. 짐검사도 오늘따라 전부 다뒤지는 바람에 시간은 더 걸렸지만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탑승을 시작하고 있었다. 자전거 여행이 처음인지라 자리에 앉자 두려움이 슬며시 다가왔다.

<설레이는 순간>

  비행기의 포효가 가슴속으로 들어왔을때 비행기는 땅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비가왔던 탓에 창문에 비가 맺혀있었고 그 때문에 창밖의 풍경이 잘 안보일까봐 걱정했지만 이륙과 동시에 물기들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하늘은 맑아졌다.


  비행기는 작았으며 친절도는 좋은 편이었다. 짧은 노선이었지만 가위바위보 이벤트를 하 여 상품을 주기도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였다. 제주항공의 기내식은 듣던대로 삼각김밥이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뭔가 마음이 허해진다.

<가슴 한켠이 허전해지는 기내식>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생각에 조금 빠져있자 일본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와지마와 시코쿠를 이어주는 오나루토대교를 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시코쿠는 비행기가 깔고 앉아 있어서 볼 수 없었다.(이게 무슨 다리고 어딘지는 구글어스에서 찾아보고 알았다)

<아와지마와 시코쿠를 연결해주는 오나루토대교>

  어느새 간사이 공항 도착. 입국 심사는 간단하게 도장만 받고 지나갔다. 누군가 내려놓은 내 자전거를 찾아 이동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무리를 해서 그런가 어깨가 좋지 않다.

<화창한 날씨의 간사이 국제공항>

  간사이 공항에서 자전거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한정거장 이동해야 했다. 안내에 물어보니 독특한(?)발음의 영어로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링쿠타운으로 가는 표를 끊어 한정거장 이동.{전철표 350엔 지출}

<한 정거장에 350엔, 비싸다>

  링쿠타운 역에서 나와 육교 계단 아래 쪽으로 짐을 옮겼다. 시원하고 사람 눈 별로 없는 곳이라 자전거 조립하기에 아주 좋았다. 자전거를 꺼냈는데 얼마나 굴렀는지 프레임에 기스가 많이 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조립을 시작하자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아까의 빗방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자전거 조립을 한참만에 마치고 짐을 셋팅했다.

<얼렁뚱땅 완성!>

  포장 쓰레기는 주차장에 잠시 주차한 뒤 티끌하나 없이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렸고 금매트 가방은 접어서 짐아래 깔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도시락을 하나 사려다가 일단은 패스. 드디어 대망의 출발- 했는데, 속도계 케이블을 장착한 채로 운송해서 그런지 속도계가 바보가 되었다. 케이블 쪽 접촉이 안좋은것 같아 이래저래 조정해서 작동시킨 후 다시 출발. 링쿠타운의 관람차를 지나쳐서 달렸는데 다시 링쿠타운의 관람차가 나왔다... 나는 길치 였던 것이다.

<두번 지나야 했던 길>

  주변도를 한참 보고 감을 잡아서 가야할 길을 찾아 달렸다. 큰다리가 보였고 다리를 넘어가기전 패밀리 마트에서 음료수 한병과 덮밥도시락을 샀다. {도시락, 음료 423엔 지출}

<한참 달리고 찍은 사진이라 도시락이 엉망이다>

  도시락을 바로 먹을까 하다가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다시 달리기 시작. 와카야마 항까지 자전거로 달려서 와카야마->도쿠시마 페리를 탈 계획이다.

<본격적으로 와카야마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일본의 풍경들을 보며 와카야마로 달렸다. 날씨도 좋고 계획했던 루트에 올라 달리기 시작하니 마음도 들떴다.

<날씨가 좋다>

클릭! Click!
클릭! Click!

  업다운업다운 달리다보니 조립이 잘못되었는지 다운힐시 핸들이 약간 덜렁덜렁하는 느낌이었다. 가벼운 언덕의 끝에 간판도 없이 할아버지 혼자계시는 자전거포에 들려서 여기가 덜렁덜렁 한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아버지는 이리저리 궁리하시더니 핸들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조이라고 설명해주시고는 달리다가 사용하라고 육각렌치까지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여행 첫 도움>

  풍경도 좋았고 그냥 신났다.

<뛰어 나오는 아이에 주의하자>

<차에 관심이 있다면 알만한 '정션 프로듀스' 건물>

  길이 맞는지 불안불안 했지만 계속 달리자 이정표가 와카야마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길도 지나고>

<이런 길도 지났다>

<재미있는 이름의 효자(孝子)역>

  와카야마시에 들어서 와카야마항을 찾는것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다.

<왼쪽이 매표소, 화살표 방향이 타는 곳이다>

  와카야마 페리터미널에 도착. 승선권은 승선 30분 전부터 구매가 가능하다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세수도 하고 아까 샀던 도시락도 먹었다 . 오는 동안 음료수도 다마셨기에 새로 구매. {음료 150엔 지출} 그러고도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이래저래 수첩에 기록을 하다보니 왠 일본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스미마셍"


  고이노 타쿠야(五井野 拓也) 라고 하는 이 청년은 도쿄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여행의 이유나 각 나라의 성향 등등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페리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어 좋았다.

<왼쪽이 일본 청년의 자전거, 오른쪽이 내 자전거다>

  탑승시간이 되어 승선권을 구매하고 탑승하는 곳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페리 승선권 2600엔 지출} 차가 먼저 탑승하고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그 다음 탑승했다.

<먼저 가는 차와 기다리는 내 자전거>

  주차장소 한켠에 자전거를 단단히 고정하고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페리에 널부러져서 이야기를 좀 하다가 나는 혼자 페리 안을 구경하러 움직였다.

<이런 바닥에 널부러진다>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 대강 둘러본 후 피곤했던 난 잠시 눈을 붙였다. 일본인 청년과의 대화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려서인지 도쿠시마에 도착할때까지 마음편하게 모자란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도쿠시마에 도착한 뒤 일본 청년은 기다렸다가 다음날 도쿄로 가는 페리를 탄다고 해서 바이바이 하려고 했지만 밖은 어두워졌고 잘곳이 정해지지 않은 나에게 대합실에서 잘수 있다며 알려주었다. 안그래도 잘 곳이 걱정이었기 때문에 한곳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같이 올라갔다. 짐을 적당히 정리하고 의자에 누웠는데 뭔가 마음이 허전했다.

<천국(?)과의 작별>

  고민 끝에 난 결단을 내렸다.
 "이곳 소개해줘서 너무 고맙지만 아무래도 첫날은 텐트에서 자야 할것같아"
  작별의 인사를 한뒤 나는 대합실을 나왔다. 나와서 자전거에 앞불 뒷불을 달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다가왔다. 잠시동안 얘기를 나눴는데 첫날이라 텐트를 치고 잘려고 한다는 나에게
 "위에 대합실이 있으니까 거기서 자는게 좋을거야"
  라고 말씀하시며 밤에 비도 오고 위험하다고 몇번이고 말리셨다. 
 "첫날은 텐트에서 자는게 의미가 있을것 같아서요"
  내가 고집부리자 말리시던 아주머니는 결국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포기하셨다. 나는 취사를 위한 가스를 사야했기에 근처 편의점의 위치를 아주머니께 물었고 아주머니는 집에 가는 길이라며 차로 안내해 주셨다. 자전거로 차의 꽁무니를 쫓아 편의점에 도착하고 아주머니와는 헤어졌지만 편의점에서는 가스를 팔지 않았다. 캠핑용 가스는 일본에서 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일부러 일반용 부탄가스를 쓰는 버너를 가져왔는데 일반가스도 파는곳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계속 편의점을 돌았다. 가스가 있는지 물어보고 근처 텐트칠만한 곳을 물어보았다. 아직 항구 근처를 멤돌고 있어서인지 마땅한 곳은 없어보였고 가스는 겨우 구할수 있었다. 가스와 함께 앞으로 영양섭취가 부족할 것을 대비하여 멀티비타민도 하나 구입했다.{가스, 멀티비타민 구입 238엔} 캠핑장소를 찾기 위해 핸드폰에 넣어간 구글 지도를 보면서 어디로 가야하나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도를 보니 도쿠시마 시청 근처로 가면 뭔가 해결이 될 듯 하여 편의점에 물어물어 한 참을 달렸다. 그러나 나는 처음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었고 길치였다. 이 날은 정말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길치였다. 불빛 하나없는 항구의 옆 샛길로 달리기도 했고, 불빛 하나없는 시골길을 달리기도, 불빛 하나없는 공장.. 공통적으로 불빛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무서웠다. 일본 청년이 대합실로 안내했을 때, 아주머니께서 말리셨을 때.. 거기서 잤어야했다.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는데 말이다!!) 돌고 돌고 계속해서 헤매다가 SANYO건물이 있었는데 경비실에 불이 환해서 가서 길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물 좀 얻을 수 있나 물어 봤더니 황당하다는듯 웃는다. 뭐 어쨌든 물은 얻었으니 다시 출발.
  도시의 밤을 달리며 이제 좀 달리는 구나 싶은 느낌으로 가다보니 도쿠시마 시청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에 보이는 파출소로 들어가서 캠핑할 곳을 물어봤는데 노숙자가 많아 위험하다고 해서(일본 경찰들이 흔히 하는 말) 1번절 료젠지(霊山寺) 근처까지 가서 잘곳을 찾아보기로 결정하고 길을 안내받았다. 방향을 잡은 나는 1번절 료젠지 쪽으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배도 고프고 졸리고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왔던 3개 1000원 주고산 양갱을 아껴 먹으면서 달렸다. (양갱 3개중 하나는 페리 안에서 일본인 청년을 주었다.) 그래도 도시안에서 달리는 것은 달릴만 했다. 그냥 밤새도록 달리고 동트면 낮에 공원 같은데서 누워서 자는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1km 정도 길이의 꽤 크고 긴 다리도 건너고 강,바다,도시 등등 버라이어티한 환경을 달리며 조금씩 지쳐갈 즘에 왠 공원 처럼 보이는 곳이 보였다. 길을 건너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보았는데 운동장 같은 곳이 있었고 한켠에 공원처럼 작게 꾸며져 있었다. 장작 4시간 동안의 방황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아 오늘 잘 곳이 정해지는구나..'
 나는 공원을 둘러보다 발견한 정자 옆쪽에 텐트를 치고 자전거를 댔다. 시간은 새벽2시. 대충 밥을 해서 가지고 있던 후리카케(밥위에 뿌려먹는 양념가루)를 뿌려서 간단하게 먹었다.

<이 시간에 무슨 생각으로 밥을 했나 싶었는데 아마 엄청 배가 고팠나보다>

  코펠에 처음하는 밥이라 밥도 생쌀같이 심하게 꼬들꼬들했고 기분도 생쌀을 씹는듯 한 꿀꿀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첫 자전거 여행, 첫 텐트 노숙.. 숙면은 BYEBYE다. 자그마한 바스락 소리에도 깼고 첫날 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동 : 인천공항->(비행기)->간사이공항->와카야마->(페리)->도쿠시마->키타지마
 숙박지 : 키타지마중앙공원(北島中央公園)
 지출 : 전철표 350엔 + 도시락, 음료 423엔 + 음료 150엔 + 페리 승선권2600엔 + 가스, 비타민 238엔 = 3761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