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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 88개소 자전거 순례] 9th day : 반딧불이의 추억 下

menzuru 2011. 4. 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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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th day : 반딧불이의 추억 下


  해안도로는 길은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신호도 없어서 딱히 멈출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달려야 했다. 중간중간 멋진 풍경에서 셀카도 남겼는데 굳은 표정뿐인 내얼굴을 보고 다시 기운차리고 밝게 웃기로 했다.

<계속되는 길, 그리고 바다>


<빨래판 같은 바닷가>




이 무슨 기괴한 현상인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다(학업에 충실하지 못했던 탓이겠지...). 그리고 오르막을 거쳐 신나게 내리막 길을 내려와서 보니 나와 함께 스피드를 즐기고 있던 녀석을 발견했다. 


<무임승차>


<대규모의 무인상점, 규모가 이 정도면 시장이다>

<노래 소리가 들릴 듯 표정이 신나보인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가..>

<마치 꽃등심의 마블링같은 파도>




터널의 통행로가 한쪽으로만 있는 경우가 많고 사진의 터널만큼 밝지 않은 터널도 많다. 귀찮아도 보도가 있는 쪽으로 건너오는게 좋고 가끔 보도가 좁은 경우가 있는데 그럴때는 차라리 보도에서 내려와서 달리는 편이 안전하다. (앞뒷 불은 필수!)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불상>

<파도 충돌테스트>




<바람의 강도를 짐작케하는 파도>




'오늘이 고치현에서 마지막 날이 되겠구나..'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던 고치현에서의 극기훈련(햇빛, 비, 바람, 고독 등)은 몸도 마음도 한층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물에도 잉어들이 살고 있다>


  39번 엔코지(延光寺)까지 가고 싶었는데 이미 해가 눕고 있어서 안될것 같았다. 슬슬 잘 곳을 봐가며 달릴 시간이므로 이시카와 아저씨(김C 닮은 아저씨)의 숙박지 리스트를 뒤져보았다. '미하라(三原)'라는 곳에 숙박지가 있다고 나와있었는데 내가 거기가 어딘지 알수가 있나.. 일단 비상식량도 구매할 겸 편의점에 들렀다. 그리고 편의점의 점원에게 리스트를 가리키며 "여기가 어디에요?" 하고 물어보니 미하라는 여기서 너무 멀다고 했다. 그래서 빵이나 구매하고 나오는데 점원이 '오셋다이'라면서 또 녹차 한통을 건냈다.
'아 여기 쓰리에프(전에도 녹차를 받았던 편의점 체인)였구나..'
암튼 마냥 고마웠다. 감동도 잠시 일단은 숙박지가 급했던 터라 나와서 지도부터 꺼내어 샅샅히 훑어보니 갈만한 곳에 '수쿠모(宿毛)'라는 미치노에키가 있었다. 그리고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호빵맨, 세균맨, 카레빵맨~>



<안돼.. 해가진다..>

  날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페달을 밟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 와중에도 사진은 남겼다. 멈춰서 사진을 남기고 멈췄던 시간만큼 더 빨리 페달을 밟으면 되니까.



  해가 퇴근하고 나서야 미치노에키 수쿠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도 텐트구나..' 싶어서 약간은 맥이 빠졌지만 이젠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에서 내려 미치노에키에 걸어 들어갔다. 아직 영업중인 가게가 있었는데 그 가게의 할아버지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다가와서는
 "여기서 잘거지?"
하고 질문을 던져 놓으시고는 내 대답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안내를 시작했다. 최적의 캠핑 장소를 안내해 주시고 바닥에 깔으라고 얇은 판자도 가져다 주셨다. 텐트가 없으면 모기장(1인용 텐트 모양)도 빌려줄까 하셨는데 텐트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텐트 설치가 끝나고 감사의 뜻으로 매상을 좀 올려드려야 할것 같아서(별 도움안되겠지만..) 저녁거리라도 좀 살까하고 가게로 갔다.

<모쿠모쿠야(もくもく屋)의 히라타 할아버지와 가족들>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편했던 모양인지 텐트를 치는 동안에 모기에 물린 곳이 가려워서 "여기..." 하고 모기 물린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물파스 같은 것을 바르라고 갔다주셨고 가지고 다니면서 바르라고 연고도 하나 주셨다.


그리고 저녁거리로 다코야키를 주문하고 생맥주(500엔...)는 비싸서 츄하이(과즙탄산주?)를 샀다. {550엔 지출} 다코야키가 준비되는 동안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나가시는 할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가게의 고양이 중 한마리, 이름이 쿠로(黑, 검둥이??)였던걸로 기억>

  할아버지를 따라 나가서 가게 옆의 바닥을 보니 특이한 그림이 있었다. 수쿠모를 중심으로 각 나라의 방향을 표시해 둔 것이었는데 한쪽에는 한국도 표시되어 있었고 그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셨던 모양이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야심작, "세계의 중심 수쿠모에서 사랑을 외치자!!">

  사진을 찍기 좋게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상자까지 마련해 놓으셨고 한쪽에는 "세계의 중심 수쿠모에서 사랑을 외치자(世界の中心宿毛で 愛を叫ぼう)" 라고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이름도 적혀 있었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수쿠모에 대한 애정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수쿠모 즐기기코스(?)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념사진, 뒤에 있는 고양이 이름은 시로(白, 흰둥이??)>

"호타루 본적 있니?"

호타루가 뭐지.. "호타루??" 내가 호타루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는 엉덩이 쪽으로 손짓을 하시면서 빛이 반짝반짝 하는 벌레라고 설명하셨다.
'아 반딧불이가 호타루구나!'
예전 행군 중에 비스무리한 걸 어렴풋이 본적 있었는데 그 정도로 봤다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본적 없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보러가자 하시며 내가 구매했던 다코야키와 츄하이를 보관해달라고 할머니께 말씀하시고는 후레쉬와 긴 꼬챙이를 가지고 앞장섰다.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미치노에키 수쿠모를 나서서 어두컴컴한 길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외에는 불빛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걷고.. 숨쉴 때마다 어둠이 입으로, 코로 빨려 들어오는 듯한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을 야구방망이 같은 긴 작대기를 든 할아버지와 단둘이 걷는다........
'헉.. 친절은 함정이었나..! 나 고기(肉)로 팔려가는건가..'
하고 내가 머릿속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순간, 할아버지는 멈춰서 어둠의 한쪽으로 후레쉬를 깜빡깜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죽이고 지켜보자 풀숲 사이에서 녹색빛 주인공이 등장했다.


말이 필요없었다. 감동적이었다.


아직은 날이 추워서 반딧불이가 많지 않다고 하셨는데 수가 많지 않을 뿐,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큰 녀석은 겐지보타루(源氏蛍), 작은 녀석은 헤이케보타루(平家蛍)라고 한다. 그리고 숨쉬듯 빛을 내는 이 녀석들과 다르게 '치카치카'하고 빠르게 깜빡깜빡하는 녀석은 히메보타루(姫蛍)라고 한다. 이때는 '아 예쁜 반딧불이구나'하고 봤던 반딧불이가 돌아와서 조사해보니 겐지보타루라는 녀석은 일본에서 제일 큰 반딧불이이며 멸종위기에 있다고 한다.


<겐지보타루(源氏蛍)와 헤이케보타루(平家蛍)>


<히메보타루(姫蛍)>

귀한 구경을 마치고 날아가는 반딧불이를 눈으로 쫓으며 걷는 길에 눈앞에서 불빛 하나가 뚝하고 떨어졌다.
'헉, 유성??'
"저건 '나가레보시(유성)'"
한두번 유성을 본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유성을 본건 처음이었다. 오늘 밤은 마치 동화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에서의 추억중에서 이찌방(최고)이었으면 좋겠다"
반딧불이 탐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가만히 던진 한마디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찌방(최고)이에요, 이찌방"

<맡겨 놓았던 저녁거리, 차가울건 차갑고 따뜻할건 따뜻하게 잘 보관되어 있었다.>

  가게로 돌아와서 잘 보관된 다코야키와 츄하이를 받아서 가게 앞의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같이 먹자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그냥 같이 앉아서 대화만 나눴다.

<할아버지의 반딧불이 지도>

  할아버지는 반딧불이 탐험 지도도 보여주셨는데 겐지보타루가 있는 곳(주황색 X)과 히메보타루(파랑색 X, 치카치카라고 설명이 써있다)가 있는 곳, 산과 밭 등 나름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할머니도 나오셔서 같이 한국과 일본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양국의 젊은이, 구직난 등)를 나누었는데 역시 월드컵에 대한 얘기도 빠질 수 없었다(당시 2010 남아공 월드컵이 개막식을 앞두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본과 경기하지 않을 때는 한국을 응원하겠다고 말씀해주셨고 나도 일본을 응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지만 죄송합니다... 저도 한국 사람인지라..)
  다코야키도 맛있고 츄하이의 시원한 목넘김까지도 감동적이었다. 다코야키와 츄하이를 다 비우고 한참 이어진 대화가 슬슬 마무리되자 나는 텐트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날 불러 세우신 할아버지는 내가 들고있던 빈 츄하이캔을 가지고 가시더니 생맥주로 가득 채워서 돌려주셨다. 내가 생맥주 가격만 물어보고 츄하이로 선택한게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잘자라"
추억을 만들어주시고 쿨하게 인사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고독감과 함께했던 고치현에 대한 기억이 따뜻함으로 가득찼다.
"오늘 여러가지로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편의점에서 샀던 빵과 오셋다이로 받은 녹차. 뒤늦은 인증샷.>

  텐트로 돌아와서 오늘의 동화같던 밤을 되뇌어보았다. 일기를 기록하면서 할아버지가 캔에 담아주신 생맥주를 마시는데 배가 부른 것을 잊어버릴만큼 쿨한 맥주였다. 엄청 시원하고 부드럽고..!! 모쿠모쿠야의 할아버지 덕분에 고치현에서의 마지막 밤은 최고의 추억으로 남았다.
 

이동 : 미치노에키-비오스 오오가타 -> 38번 콩고후쿠지 -> 시코쿠 최남단 -> 미치노에키-스쿠모
숙박지 : 미치노에키-스쿠모(道の駅-すくも)
지출 : 신발건조 100엔 + 옷 건조 100엔 + 커피우유 88엔 + 초코빵 105엔 + 핫케이크 84엔 + 삼각김밥 105엔 + 컵라면 168엔 + 우마이봉X3 30엔 + 커피 120엔 + 음료수 88엔 + 미니크로와상 126엔 + 다코야키 300엔 + 츄하이 250엔 = 1664엔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저자 : Lencer, 수정 : menzuru)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Alike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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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쪽을 지나는 여행자가 있다면 미치노에키 수쿠모의 모쿠모쿠야(もくもく屋)에 꼭 들러보길 바란다. 모쿠모쿠야의 주인 히라타 히데미(平田秀美) 할아버지가 분명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실것이다. 실제로 구글을 검색해보면 모쿠모쿠야의 주인 할아버지께 추억을 선물받은 여러 여행자들의 기록이 나오는데, 나는 몰랐던 할아버지의 성함까지 구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_-;

그 중 한 페이지(일본어 페이지-사진만 감상하세요)
http://ameblo.jp/bee0517/entry-105638784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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