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전거 여행

[일본 시코쿠 88개소 자전거 순례] 10th day : Bye고치 Hi에히메

menzuru 2011. 5. 6. 01:17
반응형

- 10th day : Bye고치 Hi에히메


  밤에 추워서 잠시 뒤척이긴 했지만(가져왔던 바람막이를 잃어버린 때문이다. 간 때문은 아니고..) 자리가 안정감있었고 비도 안와서 전체적으로 괜찮은 잠자리였다. 잠자리 평가 후, 이어지는 출발 준비는 늘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새벽 5시쯤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뜨고 밝아진 텐트 안을 느낀다. 요깃거리가 있다면 간단하게 속을 달래며 지도를 보고 오늘 달릴 거리를 예상해본다. 그리고 어제 달렸던 속도계의 수치를 사진으로 남겨놓고 리셋. 지도, 수첩, 빨래 등 밖으로 나와있는 물건들을 챙기고 침낭을 갠다. 돗자리 위의 짐을 텐트 앞쪽으로 몰아놓고 돗자리까지 개면 텐트 안에서의 준비는 끝이다. 밖으로 나와서 밤새 불침번을 서준 자전거를 가볍게 쓰다듬어 이슬을 닦아주고 텐트 안의 모든 짐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조립의 역순으로 텐트를 분해하고 바닥이 습기를 머금었다면 즉시 닦아서 정리한다. 이제 자전거를 셋팅할 차례. 짐가방을 먼저 자전거에 장착하고 그 위에 묶을 짐을 올려 짐끈으로 단단하게 고정한다. 속도계까지(잊지말고!) 장착하고 나면 내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자전거가 짊어지게 된다.
  준비하는 동안 어제의 아름다웠던 밤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훈훈해진 마음으로 준비를 마무리했다. 

<내리막 길이 남겨준 흔적.. 태극기의 깃대는 뜻모를 저 글씨가 맘에 안들었나보다>

어젯밤의 여운으로 그냥 떠나기는 아쉬워서 미치노에키 수쿠모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최고의 추억을 남겨준 모쿠모쿠야(もくもく屋)>

  가게 앞의 테이블에 야스파출소에 남겼던 메모와 같이 '감사했습니다. 잊지않을게요.'하고 간략하게 메모를 남겼다.

<세상(세계)의 중심 수쿠모에서 사랑을 외치자(외칠사람은 시끄러우니까 바다쪽으로 가라고 써있다)>

가게와 할아버지의 '작품' 사진을 찍고 미치노에키에 붙어있는 공원을 둘러보았다.

<건너편을 볼 수 있는 망원경(무료)>


<이래 봬도 니콘꺼다>


<새벽부터 산책하는 사람이 보인다>


<나가는 길에 보이는 "또만나요(またね)"라는 글씨에서 히라타 할아버지의 센스가 느껴졌다>

<날씨도 좋고 기분좋은 출발이다>

39번 엔코지(延光寺)로 가는 길에 아침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덮밥도시락과 데리야키버거{503엔 지출}>

그 자리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 어제의 추억과 오늘의 좋은 날씨 덕분에 눅눅했던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는 느낌이다. 고치현이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일지도.. 고치현도 안녕이구나.








  날씨도 기분도 모두 좋았지만 며칠동안 비를 맞고 달렸더니 자전거는 몸살이 난 모양이다. 자전거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브레이크에게도 자기자리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다. 39번 엔코지에 들렀다가 자전거포에 들러야겠다.

<四国 第39番 延光寺>

<시코쿠 남단을 훑고 올라가는 길이라는 것과 38번과 39번의 거리가 72km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빛이 참 좋았다>

  절을 나와 주차장에서 오늘 필요한 지도를 꺼내고 간단하게 짐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자동차로 순례를 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과는 늘 비슷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혼자 외로움을 견디며 달려서 그런지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힘이 되는 것 같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단하다고 내 여행에 대해 칭찬해 주시고는 "뭔가 줄게 없을까.." 하시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셨다. 
 

<사진초보답게 직광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T-T>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경쟁하듯 차의 앞좌석과 뒷좌석을 뒤지시더니 맛있어보이는 빵과 녹차를 한통 건내셨다. 말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었는데.. 너무 감사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신 빵과 녹차>

그리고 자전거포를 찾아나섰다. 거리를 빙빙 돌다가 별 고민없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어봤다.
"이 근처에 자전거가게가 있나요?"
(자전거포가 일본어로 뭔지 몰라서 '지텐샤自転車노 미세店' 라고 물어봤다)
"아 자전거포~ 이렇게 저렇게 어쩌구 저쩌구 가시면 됩니다."
(자전거포는 특이하게 지텐샤야상自転車屋さん이라고 말하나보다)
점원은 빈 종이에 약도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이미 자전거포에 도착한 듯이 들뜬 마음으로 약도를 보며 신나게 자전거포를 향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자전거포를 만날 수 있었는데 물론 편의점 직원이 알려준 자전거포는 아니었다. 나는 길치이기 때문이다.... 발견한 자전거포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모두 취급하는 곳으로 보였다.


들어가서 일단 브레이크 조정을 부탁했다.
"며칠동안 비를 맞고 달렸더니 브레이크가 안좋네요"
그러자 에픽하이의 미쓰라 진을 닮은 청년이 내 자전거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소리도 좀 나고..."
하더니 본격적으로 손을 보기 시작했다. 브레이크를 전부 분해해서 윤활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조정도 해줬다. 그리고 뒷기어 카세트 쪽에서도 소리가 나서 그쪽에도 윤활스프레이를 듬뿍 뿌려주었다. 사실 윤활스프레이를 가지고 오려다가 비행기 통관이 어려워서 두고 온게 걱정이었는데 한방에 해결되었다. 브레이크 조정과 소음문제까지 해결하고 점검을 하던 미쓰라닮은 청년은
"핸들이 흔들흔들 하네요?"
하더니 일본에 도착한 첫날부터 속썩이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온 김에 자전거 바람도 넣고 가야겠다'라고 생각할 때
"에어도 오케이!"
하고 미쓰라닮은 청년이 말했다. 모든 정비를 마치고 미쓰라닮은 청년이 주인아저씨께 뭐라뭐라 하더니 주인아저씨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무료, 노 챠-지(no charge)"
아마 미쓰라닮은 청년이 부품을 교체하거나 한건 없다고 보고한 것 같았다. 나는 주인아저씨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정비하느라 손이 기름때 범벅이 된 미쓰라닮은 청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마운 미쓰라청년>

  자전거포를 나서서 다시 에히메(愛媛)현의 40번절 칸지자이지(観自在寺)를 향해 출발! 기분좋게 출발하고 자전거에 올라서 달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우와... 이거 뭐야..'
자전거의 느낌이 전과 다르게 아주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마치 오토바이를 탄 것처럼.. 이 자전거 구매해서 지금까지 타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소리도 하나도 안나고 페달을 안밟아도 가는 것 같다. 미쓰라청년의 장인정신 덕분에 나는 자전거여행의 첫날과 같은 기분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부터 계속 기분 좋은 날이다. (클릭!)>

<이제 이 앞으로 에히메현이다. 안녕~고치현, 안녕?에히메현>


<집에 가지고 가고 싶었던 올드카, 재생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여기도 올드카 꽁무니>

<이렇게 나무답게 생기기도 쉽지 않을텐데..>


<자전거여행자들이 한번씩 남기는 셀카. 물론 카메라를 가지러 다시 와야한다...>

<四国 第40番 観自在寺>

  40번 칸지자이지에 도착. 사진에 보이듯 절 앞에 왠 할아버지가 밥그릇을 하나들고 코먹는 소리를 이따금씩 내면서 불경을 외고 있었다. 시코쿠의 사람들이 순례자에게 베푸는 '오셋다이'를 악용해서 몇번이고 순례를 돌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말로만 듣던 그런 사람인가..?

<사진에 보이듯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지나가다가 다이소를 발견하고 뭔가 구입할 것이 있을까 하고 잠시 들러보았다. 자전거 줄끈이 점점 닳고 있어서 여분으로 하나 구입하고 나머지는 기념품 삼아서 자전거컵홀더와 앞바퀴락을 구매했다. {420엔 지출}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결국 빗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먹구름이 쫓아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비를 피해 맑은 하늘쪽으로 먹구름보다 빠르게 달려봤지만(우습지만 자전거 여행자라면 한번쯤 해봤을 시도) 결국 비를 만났다. 일단 근처의 휴게소로 비를 피했다.
'아 출발땐 날씨 좋았는데.. 고치현이 날 보내기가 많이 서운했나..'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씻어서 며칠째 들고만 다녔던 감자를 삶기로 했다. 감자를 삶아본 적이 없었지만 별 고민없이 코펠에 물을 받아 감자를 넣고 그냥 끓이기 시작했다.

<바로 셋팅. 빵 포장재를 발로 밟아 바람을 대충 막았다>

중간에 찔러보고 서걱거리는 감자에 실망하는게 싫어서 그렇게 한참을 끓였다. 이쯤이면 됐을까 하고 열어 젓가락으로 콕 찔러보니 성공!!


<손은 더럽지만 감자는 노랗게 잘 익었다>

잘 익은 감자 하나를 까서 느긋하게 먹고 있으니 비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빵과 먹을 커피우유를 하나 구입했다. {110엔 지출}


<낯선 고양이에게서 형님들의 향기를 느꼈다..>

<죽은건 아니었다.. 아마..>








  에히메현을 달리다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전거전용 터널이었다. 차가 지나는 터널보다 훨씬 밝아서 좋았고 사고위험이 없어 긴장하지 않고 편안히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통행량을 생각해 볼 때 과하지 않나 싶다. 혼자 출퇴근하는 차량으로 버스를 구입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분명 무언가 이유는 있었으리라..) 어찌되었건 좋다. 부럽다. 터널의 보도에 펜스만 둘러져 있어도 상당한 안정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보도를 조금 넓히고 보도에 별도조명과 펜스만 설치해도 충분히 안전하고 실용적일 거란 생각을 해본다.

<차가 지나는 터널의 옆에 자전거전용 터널이 따로 있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는 내내 굉장히 시원했다>

<바닥은 물청소가 필요한듯>


<터널 밖의 인어도 그렇고 파도와 조개 장식도 그렇고 뭔가 사연이 있나보다>

<시코쿠노미치라고 적힌 이 애증의 녀석이 그리울 날이 올까...?>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출출하기도 하고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뚝방에 올라앉았다. 바다를 보며 쿨하게 아침에 노부부에게 얻은 빵과 커피우유를 먹었다.

<좀 외롭긴 했지만 바다를 보며 간식을 먹는 것은 참 기분좋았다>

<이거 맛있다. 애들입맛이라 그런가 커피우유 중에 이게 제일 맛있었다. 커피맛사탕맛>



<그림 좋은데?>









<귀여운 친구들이 한가득>

<잠든 것 뿐이다..>



<자전거전용 터널은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


<저 간판을 종종 보면서 미용실인가 했는데 주유소였다>

  편의점에서 저녁거리와 간식으로 삼각김밥과 우마이봉을 3개 샀다. {140엔 지출} 삶아놓은 감자가 있어서 간단하게 구매하였다.

<우오.. 오랜만에 도시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시내를 달리니 참 반가웠다. 시내를 달리던 도쿠시마(徳島)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순례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꼬마들도, 교복입은 학생들도 인사한다.

<한 공원에 전시되어 있던 증기기관차(C12 259)>

<기차역의 플랫폼처럼 꾸며놓았다>

<미마까지 7km!>

<산으로 달리는 전철>

<四国 第41番 龍光寺>


<전망좋은 화장실>



  42번 부쯔모쿠지(仏木寺)까지 가려다가 해가 질것 같아서 오면서 봐뒀던 미치노에키 '미마'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그런데 되돌아 가는 길에 어디서 본 듯한 오토바이를 발견.
'헉.. 이건 전설의....'

<KAWASAKI의 두번째 Z시리즈. 750RS, 일명 Z2다>

시코쿠에서 Z2를 볼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낡았지만 사진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와 박력이 대단했다. 가만히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남기고 돌아섰다.


<미치노에키 미마에서 나의 눈길을 훔쳤던 붕어빵 조각상>

  미치노에키에는 스님 두분이 먼저 계셨는데 내가 다가가자 인사를 건내왔다. 스님들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텐트 칠려면 치라고 했는데 난 벽이 있는게 좋아서 좀더 둘러보았다.
  순서가 바뀐듯 하지만 이번엔 캠핑 과정을 설명해보겠다. 먼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적당한 장소(미치노에키, 공원 등)를 찾아 들어간다. 천천히 장소를 돌며 내가 안정감을 느낄만한 장소를 찾는다. 물과 화장실이 가까운 곳, 지붕이 있는 곳, 적어도 한쪽면이상이 벽으로 된 곳이 좋다. 장소를 찾았으면 짐을 전부 풀어 한쪽에 두고 텐트를 친다. 설치가 끝났으면 그 안에 돗자리(또는 매트)를 깔고 나머지 짐을 전부 들여 놓는다. 이때 짐은 벽의 반대쪽에 두고 몸을 벽쪽에 두고 자면 방풍도 되고 심리적 안정감이 생긴다. 그리고 부근에 안전하게 자전거를 묶고 나면 끝이다. 아, 자기 전에 신발은 꼭 텐트에 들여놓자!!

<몸은 벽쪽으로, 짐은 벽의 반대쪽에>

<이 자리도 좋았지만 벽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이 스님들도 순례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캠핑 동무가 있어서 내심 반가웠는데 이들은 내가 한국인이던 뭐던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듯 했다.

<씻으러 가는길에>


씻고 돌아오는 길에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 뽑아서 텐트로 돌아왔다. {150엔 지출}

<아까 샀던 우마이봉과 치킨타르타르맛 삼각김밥>

배를 채우고 간단히 일기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근데 이 스님들 떠드는 소리도 크고 TV인지 라디오인지도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언제들 주무시려나...

이동 : 미치노에키-수쿠모 -> 39번 엔코지 -> 40번 칸지자이지 -> 41번 류코지 -> 미치노에키-미마
숙박지 : 미치노에키-미마(道の駅-みま)
지출 : 덮밥 398엔 + 데리야키버거 105엔 + 짐끈 105엔 + 컵홀더 105엔 + 앞바퀴락 210엔 + 커피우유 110엔 + 삼각김밥 110엔 + 우마이봉3개 30엔 + 음료수 150엔 = 1323엔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저자 : Lencer, 수정 : menzuru)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Alike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