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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 88개소 자전거 순례] 11th day : 선물 받은 휴식

menzuru 2011. 12. 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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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th day : 선물 받은 휴식

  아..결국 잔것같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느낌부터 썩 맘에 들지 않더니 아주 매너없는 빡빡이들이었다. 새벽에도 지들끼리 시끄럽게 떠들고, 크게 틀어 놓았던 TV인지 라디오인지도 끌 줄을 몰랐다. 에이 나쁜놈들.
 

<예쁘게 말아 졌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오늘은 44번절이나 45번절까지 가면 되겠다. 그럼 가봅시다.

<새들의 화장실이었던 앞마당>

  내부에서의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보니 내가 잔 곳이 새들의 화장실이었나보다.. 희안하게도 텐트에는 떨어지지(싸지) 않았다.


<붕어빵도 잘지내~>

따스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미치노에키를 나섰다.

<산에 걸린 구름 속에는 산신령님이..>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새벽부터 바쁜 개님>

<리터칭이 필요없는 너무너무 멋진 풍경이었다>


  달리면서 심심할까봐 준비해 온 포터블 스피커와 MP3는 신선한 경치를 보며 달리는 재미에 심심할 틈이 없어서 가지고 온 것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11일째가 되자 슬슬 익숙해져서 인지, 심신이 지친 탓인지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기도,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해서 스피커 대신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 달렸다.


<四国 第42番 仏木寺>

<이 녀석도 늘 고생이 많다.>

<42번째 만남 기념셀카>




  42번 부쯔모쿠지에서 43번 메이세키지로 가는 길에 또 다시 공복에 만난 업힐.. 밀려오는 짜증에 '아~ 역시 나는 공복때 유독 예민해지는 사람이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이 자슥들이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런 스키드 마크가..>


  근데 오늘따라 업힐을 오르는 느낌이 무겁다. 자전거가 이상한걸까 내몸이 이상한걸까..? 뭐가 이상한지 몰라도 제대로 이상을 느끼기 전에 약부터 미리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업힐이 끝나고 나타난 순례자휴게소에 쉬어가기로 결정.


<어제 삶은 감자로 공복 달래기>

  어제 삶아서 가지고 다니던 감자에 집에서 가져온 일회용 케찹을 발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간단하게 속을 달래고 가지고 있던 아스피린을 먹었다.
 
  그러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삶의 의지가 대단한 녀석인가 보다.>

<다른 순례자들>

  로손에 들러 아침식사와 음료, 비상식량 등을 대거 구매. {643엔 지출}

<먹고 싶은건 다 사고 보자>

<四国 第43番 明石寺>


  누구들 때문에 잠을 설쳐서 그런가.. 몸이 너무 좋지 않다.. 쉴 곳이 나오면 좀 푹 쉬다가(..푹 자다가) 가려고 했는데 마땅히 쉴 곳이 나오지 않았고 하다못해 마땅한 그늘조차 없었다. 

  '뭐 이런날이 다있냐..'


  겨우 작은 슈퍼 앞에서 작은 그늘을 만났고 그 그늘 밑 계단에 걸터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매실소다 구매{100엔 지출}>

  가게 앞이라 오래 앉아 있기도 뭐했고 앉았더니 눕고 싶어져서 잠시 충전을 하고 일어나서 다시 달렸다.
  그러나.
  오늘따라 이정표도 엉망인지 길도 헤메서 작은 마을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헤메고 있었다. 겨우 마을을 빠져나와 가야할 길과 가고 있는 길이 일치하게 되자 오래지 않아 순례자 휴게소를 만날 수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듯 일단 눕고 봤다.
  침낭을 베고 그대로 뻣어서 30분쯤 잤을까.. 희미하게 눈을 뜨자 왠 식당 유니폼을 입은 아주머니가 과일과 차를 가져다 주셨다.
  "오헨로 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아주머니는 식당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릇을 비워나갔다. 작은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고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다.

<천사....?>

  지금보니까 이 휴게소는 식당 주차장 안에 있었구나.. 일단 드러눕고 보느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식당에 그릇을 가져다 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출발.


  오주(大洲)시에 들어오자 무슨 성이 보였다. 표지판을 보니 성의 이름이 오주(大洲)성인가 보다. 일본의 성은 처음보는 것이어서 뒷편에서 자전거와 함께 사진을 남겼다. 쉬어가기도 할겸..


  보다시피 쉴만한 장소는 그늘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더 이동해서 그늘이 있는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었다.

<오주성(大洲城)>

<앞에는 강물이 흐른다>

  달리던 길에 모스버거를 발견했다. 안그래도 오랜만에 모스버거가 먹고 싶었는데.. 몸이 안좋을땐 먹고 싶은건 다 사자. 대로변이라 그런지 드라이브쓰루(Drive-Through)를 운영하는 매장이었는데 자전거도 되나..? -_- 싶어서 그냥 땡볕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매장으로 들어갔다.



  모스버거 구입. {320엔 지출} 포장된 모스버거를 받아서 챙기고 안장이 말랑말랑 할정도로 뜨거워진 자전거에 올라탔다.

<욘사마 발견!>

<돌이 되어버린 도라에몽과 토토로>

  엇?? 이니셜D다! 에히메현에는 어제부터 클래식한 놈들이 많이 보이네.

<토요타 코롤라 레빈(Toyota Corolla Levin) 2도어>

<흔해빠진 도라에몽>

<키가 190cm가 넘는 내친구는 지나갈 수 없다(구부리기 없기)>

<주변안내도>

<계속되는 친절한 안내>

<자동차 하나로 꽤 일본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오늘밤 누군가의 잠자리가 되어 주겠지.>


<1004km 기념샷. 어느덧 누적 1000km 돌파다!>


<시내 갔을때 마루나카에서 구매했던 간식들 {381엔 지출}>

<포장된 모스버거. 언제먹지..?>

<짜증나는 업힐의 380번 국도>

  380번 국도의 업힐은 산에 오를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짜증나는 스타일의 업힐이었다. 끝날것 같으면서 몇시간을 업힐만 하게되는 어장관리녀의 밀당같은 길이었다.

<특이한 미치노에키를 발견했지만 잠들기엔 시간이 이르다.>

<특이한 생김새가 무섭기도하고 귀엽기도하고>

<야야 차온다 저쪽봐>


<으어.. 어디서부터 올라온건지 감도 안온다.>

<단체로 불을 괴롭히는 나무들>


<산을 넘고 있다는 그림이겠지?>


<해가 눕는다. 슬슬 잘 곳을 생각하자>

  해질무렵이 되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오늘은 절대 텐트에서 안잘거다.' 근데 오늘은 정말정말 텐트에서 안잘거다... 몸도 안좋고.. 이게다 어제 빡빡이 아저씨들 때문이다. (새벽에 좀 추웠기도 했지만..)


<四国 第44番 大宝寺>


  44번 다이호지에 도착해서 잠 잘만한 곳이 있을까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돈을 좀 들여서라도 지붕있는 잠자리를 잡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고 싶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절을 벗어났다.


<내 자전거가 수륙양용이라면..>

  일단 근처 마을에 도착을 해서 동사무소 같은 곳에 들어갔다. 그런데..

<잊지 않겠다.. -_->

  아무도 쳐다보지도 신경도 안쓰고 투명인간 취급이다. 뭐이런.. 퇴근시간이 다되서 일까. 굉장했다. (이때의 상황이 최근 한 개그프로에서 '한사장'이라는 코너와 비슷했다. 내가 칠천구백칠십원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뭐 이래 소통이안돼!)
  옆나라와서 욕은 못하겠고 얌전히 동사무소를 나와서 택시사무소 같은 곳이 있어서 들러서 물어봤다.
  "근처에 싼 민박집이 있습니까?"
  택시기사 아저씨가 설명해 준 곳으로 가봤는데 숙박비는 무려 4500엔. 순례자가 묵을만한 곳은 아니다. 카운터에 있던 점원이 사장님과 전화로 어느정도 선에서 타협을 해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고맙다고, 괜찮다고 하고 나왔다. 자존심도 그렇고 반 이상 깎아달라고 하기에도 뭐하지 않는가..-_-;
  가게를 나와서 돌아다니다 보니 경찰서(파출소 수준이 아니었다)가 있어서 들어가서 다시 물어봤더니 방금 갔던 곳 외에는 마땅히 없다고 해서 결국 텐트칠 장소를 안내받았다. 여기서도 역시 경찰들이 하는 소리는 똑같았다. 이 주변은 범죄가 많고 위험해서 어쩌구저쩌구(칼로 사람찌르는 흉내를 내면서)하면서 구역을 벗어난 먼 곳을 알려준다.
  '하아~ 오늘도 결국 텐트구나.. '
  축처져서 경찰서를 나온 나는 안내받은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민박집이 보여서 물어나보자 하는 생각에 벨을 눌렀다.
  "하이"
인터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 입니다. 1박에 얼마 입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아저씨 한분이 나오셨다.
  "1박에 3000엔 입니다."
저렴하긴 하지만 역시 순례자가 쓸 돈은 아닌거 같아서 
  "아, 그렇습니까."
하고 텐트칠 장소로 가려는데 실망하는 기색을 아저씨께 들킨 것일까..
갑자기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0엔입니다. 무료."
갑작스러운 상황이 이해가 안되서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짓자,
  "제 선물(프레젠토)입니다."
라고 하셨다. 이때 힘들었던 것들이 주욱 떠오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사내자슥이 쪽팔리게.. 당장은 보답해 드릴 수 있는게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서 꼭 보답하리라 마음먹었다. 이곳에 와서 고마웠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를 민박집의 안으로 안내하기 시작한 아저씨는 곳곳의 이용시설을 설명해 주시고는 내일 아침식사도 선물로 주신다고 했다.

<카리야 히데아키(刈谷 英明) 아저씨, 60세다. (할아저씨인가..-_-)>


  나는 방에 짐을 풀고 주방에 계신 아저씨를 찾아가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내가 불편해 할까봐 아저씨는 "아무쪼록 편하게 있어요." 라고 하셨다. 주방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씩 하면서 아저씨의 취미인 낚시 얘기와 민박집에 오는 외국 손님들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었다. 저녁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파진 나는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근처 편의점 위치 안내받았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도시락을 하나 고르고, 아직 먹지못한 모스버거가 생각나서 콜라를 사고 싶었으나. 시원한 츄하이(과실탄산주)도 먹고 싶어서 주류코너에 서서 무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던 것이 있었는데 '왜 주류코너에 콜라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콜라에 알콜 도수가 표시되어 있었다. 지금 나한테 딱 좋은 녀석인 것 같아서 바로 선택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443엔 지출}


  도시락을 사다 놓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딱 좋은 온도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몸이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서서히 피로가 몸밖으로 퍼져나간다.

<기린의 콜라쇼크. 보드카와 콜라를 섞었나 본데 꽤 좋았다.>

<다 식어빠진 모스버거>

  도시락을 먼저 먹고 모스버거와 콜라쇼크를 먹었다. 모스버거는 다 식었지만 맛은 괜찮았고 콜라쇼크는 그냥 콜라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냥 콜라랑 똑같네?' 라고 생각할 즈음부터 숨쉴때마다 목구멍 저편에서 알콜냄새가 올라왔다.

<언제 생기는 지도 모르게 흠집이 늘어난다>

<오늘은 8시간 동안 119km를 달렸구나>

<또 다시 전기도둑>

  배불리 먹고.. 커피도 마시고.. 빨래도 해서 널고.. 일기를 정리한 뒤 푹신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누웠다.
지금은 이 시코쿠 순례를 다시하라면 절대로 안할 것 같은데.. 나중에는 어떨까..


이동 : 미치노에키-미마 -> 42번 부쯔모쿠지 -> 43번 메이세키지 -> 44번 다이호지 -> 카리야 씨의 민박집
숙박지 : 카리야 씨의 민박집
지출 : 음료수 168엔 + 커피우유 100엔 + 콧페빵 110엔 + 야키소바빵 160엔 + 삼각김밥 105엔 + 음료수 100엔 + 블랙커피 128엔 + 캔커피 50엔 + 카레빵 78엔 + 에그&베이컨빵 125엔 + 모스버거 320엔 + 콜라쇼크(술) 148엔 + 도시락 295엔 = 1887엔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저자 : Lencer, 수정 : menzuru)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Alike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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